[칼럼] 이제는 말한다 광고주들의 갑질

백종도칼럼니스트 승인 2019.11.08 16:49 의견 0

[AP신문= 백종도 컬럼니스트] 한 때 대한민국 광고계를 들썩이게 하고 여러 광고 종사자들의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냈던 물병 사건이 생각난다. 회사는 업계 관행상 언급할 수 없었고, 팀장 직원들은 참아야 했다. 그리고 광고는 계속된다. 월급 주는 외부 사장님, 대행하는 회사 광고대행사. 이러한 사건, 생각, 단어만 보아도 광고회사는 철저한 '을'이고 AE들도 '을'이다.

간혹 AE들의 술자리 및 모임에서는 어느 광고주가 더 진상인지 에피소드를 얘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광고주 진상 배틀 타이틀을 걸고 누가 더 힘든지 경쟁하는 상황이 웃기지만 한편으로는 슬프고 씁쓸하다.

연차가 쌓이고 다수의 광고주를 경험하게 되면서 천사처럼 변하는 것 같다. 워낙 많은 진상과  갑질을 겪어서 일까? 10년 이상 업계에 종사하신 상사들을 보면 광고주의 무리한 요청에도 허허허 할 수 있는 여유를 보이는 '멘탈갑 슈퍼 히어로'들이었다.

5년간 주위 직장동료 상사들의 얘기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7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1. 스틸형


광고 회사는 매출을 위해 제안을 하게 되고 광고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전략, 아이디어, 매체 구성, 실행안을 상세히 작성한다. 하지만 비딩이라는 경쟁 시스템에서 단 한 곳만 선택되는 상황이다. 탈락한 광고 회사의 아이디어나 전략, 실행안을 부분적으로라도 채택해서 활용하기도 한다. 사실 대행사 입장에서 아이디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어필하기는 쉽지 않다.

또는 광고주에게 아이디어를 제안했으나 빼먹기만 하고 비용적인 부분으로 다른 대행사에게 주거나 직접 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디어와 제안이 채택 안된 실망감도 크지만, 제안되었던 컨셉, 카피 등 다른 사람의 손에서 그대로 사용되었을 때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2. 급건 형


모든 것을 빨리 달라고 재촉한다. 
오후 6시~7시에 메일을 보내자마자 '다음날 오전까지 주세요'라는 요청도 있고 모든 메일에 급건! 을 붙이기도 한다. 빨리빨리도 좋지만 급하지 않은 확인 가능 건도 재촉하는 것은 정말 괴롭다. 10분마다 30분마다 계속 전화해서는 전화받고 응대하느라 작업도 못한다. 대행사에 3~5년 정도 있다 보면 어느 정도 디자인 작업시간을 예상할 수 있다.

대기업 내부에서는 어떤 것이든 의사결정이 느리게 될 수밖에 없어서 내부 디자인팀 작업 속도가 더디다. 게다가 대행사에게 닦달할수록 빠르게 작업물이 나왔던 다수의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요청하는 것이다.

매체 세팅은 어떠하랴? 디자인과 요청사항을 자세하게 정리해야 하며, 매체에서는 검수시간이 필요하고, 수정시간이 필요하고, 세팅하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AE들이 타 제작팀, 매체팀에게 전달하는 시간도 고려해달라. 최소한 우선순위를 정해서 작업시간을 고려하여 얘기했으면 한다. 멀티태스킹도 한계가 있다.

뭐든지 급건일 때 AE도 고통, 디자이너도 고통, 세팅하는 매체사 및 랩사도 고통이다. 모두 급한 마음과 긴장상태로 8시간 이상을 보낸다고 생각해보라. 고통스럽다. 어떨 때는 아무리 손을 빨리 움직이고, 전화를 해도 시간상 도저히 안될 때 흔히 멘탈이 터져서 모니터 앞에서 멍하게 있을 때가 있다.


3. 네고형


보통 대행사의 수수료는 15~20% 정도로 책정되어있다. 때에 따라선 10% 정도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광고주 입장에서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네고(할인)를 요청한다. 성과가 잘 나오고 호황일 때는 큰 문제 없으나 경기가 나쁠 땐 비용을 줄이는 폭이 크다.

최저 금액까지 가게 되면 결국 대행사는 운영을 포기한다. 게다가 한번 네고가 들어가게 되면 이후에 상황이 호전되더라도 다시 정상 단가로 돌리기 어렵다. 비용 네고는 광고주와 대행사간의 신뢰도 필요하고 대행사에서 어느 정도 감소폭을 감당할 선에서 정해진다. 그리고 윗사람은 신경을 그만큼 덜 쓰고 힘을 빼라고 한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기에 슬프다.

물론 이런 네고의 경우가 많아진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일부 잘못된 대행사의 이른바 '견적 뻥튀기'인 것이다'

대행수수료를 매체비에 15%~20% 안 붙이고 2~3배씩 올리고서 청구하는 방식이다. 일부 잘못된 업체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격을 올려서 제안하고, 그걸 깎아주고 생색내는 식으로 하다 보니, 이런 대행사를 경험하게 되면 이후에는 무조건 깎아달라고 하는 것이다. 몇 바이럴 업체를 컨택하여 견적을 받았는데 퀄리티에서 차이가 있을 수 없는 CPM 고정 배너광고가 A에서는 커뮤니티 배너 1주일 100만 원, B에서는 1주일 250만 원을 청구하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대행사에 오래 있다 보니 대략 단가들이 보인다. 제발 누구든 속이려 들지 말고, 숨을 죄이지 말자! AE는 좋은 기획을 하고, 광고주는 그에 대한 정상적인 비용을 주는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4. 수정형


디자인, 기획서, 제안서 수정을 계속해달라는 유형이다. 열정이 넘쳐 만족을 모르는 광고주 일수 있고, 감각이 없는 제멋대로인 광고주 일 수도 있다. 버전이 v20까지 가는 파일명을 볼 때면 질리고 소름 돋을정도다.

문제는 한 번에 정리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수정인 것이다. "폰트를 키워주세요. 자간을 넓혀주세요. 채도를 좀 더 넓혀주세요. 아이콘을 더 키워주세요." 수정 위에 수정이 덮여지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디자인팀에서도 슬슬 짜증이 시작한다. 급기야는 광고주의 요청 외에도 디자인팀의 항의와 짜증을 듣게 된다. AE들은 중간에서 디자인팀도 달래야 하고, 광고주를 최대한 설득해야 한다.

 



수정 요청을 10분 전에 주었는데 5분 뒤 또 수정 요청이 오고, 카톡으로 오고, 전화로 온다. 메일로 확실하게 보내줬으면 한다. 게다가 수정 후 전달했을 때 본인이 얘기했다는 것이 아니라며...(처음부터 제대로 명확하게 달라!) 나중에는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하고, 내부 디자인팀과 나름 회의 후에 나온 결과물만 받고서 별로라고 한다. 광고주에 대한 원망이 커지게 되는 순간이다.


5. 알아서형


'무리한 요구를 하는 클라이언트'라는 이모티콘이 있다. 이 유형은 이 이모티콘으로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다. AE들끼리도 감탄했지만 필자도 이걸 만드신 분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한 번쯤 AE들이 들어봤던 요구 사항들이다.
명확한 지시가 없이 알아서 해달라는 광고주,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한 요청, AE도 멘붕 제작팀도 멘붕이다. "그쪽이 전문가 아닌가요?", "이런 건 아시잖아요? 이런 느낌"  물론 우리는 전문가로서 대행을 하는 것이지만 방향성도 없이 진행하기란 어렵다. 대략적이라도 목적, 원하는 카피, 디자인 등이 있다면 논의하여 더 좋은 방향성으로 끌 수 있을 것 같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무리한 요구를 하는 클라이언트" 


 

6. 사생활 참견형


광고주와 1년 동안 함께하다 보면 여러 번 미팅 및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된다. 그럴 때면 나름대로 정도 들고 친해지게 된다. 그러다가 간혹 "여자 친구는 있으세요? 남자 친구는 있으세요? 결혼 언제 하세요? 자식은 언제 낳으세요?" 명절날 친척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듣는 경우가 있다. 명절은 자리를 피할 수 있지만 미팅이나 술자리에서 피할 수는 없다. 괴롭다.

광고주와 친해지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으며, 신뢰를 쌓을 수 있고, 본인 스스로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광고주에게 인생 선배로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알아가고 즐거운 이야기하는 것은 좋다. 과하지만 않았으면, 그리고 갑과 을의 관계에서 막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중에 연간 비딩에서 수주를 못하게 되면 업무를 같이 할 일도 없어지게 되어 연락이 끊기게 되기도 한다. 예의를 지켜주었으면 한다.


7. 자랑형


소개팅에서 남녀 모두 싫은 사람 유형과 같다. 허세형, 자랑형이다. 소개팅에서 허세와 자랑을 듣는 것도 싫은데 이 또한 피할 수 없다는 것이 AE의 슬픔이다. 땅을 사고, 재테크를 하고, 여행을 갔다 오고, 무엇을 샀고 자랑하고 싶은 것은 안다. 하지만 공감이 안된다.

AE대행사 일반 대리급 직원들은 광고주 부장님, 대표님의 월급과 같지 않다. 예전에 자신의 연봉을 자랑하던 대기업 신입도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연봉을 물어본다. "와 저는 돈이 남더라고요!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유럽여행도 다녀오고 차도 샀어요!", "연봉이 어떻게 되세요?" 참을 인자 3개를 그린다. 이러한 자랑형은 맞장구를 크게 쳐준다. 지적할 순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그런 대접을 받으며 하나의 진상 광고주가 되어가는 것 같다.

우리 앞에서 한없이 높은 상사가 광고주의 비위를 맞춰주고 맞장구를 쳐주는 것을 보면 슬픔도 앞서지만  회사를 위해, 본인을 위해, 수주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5년이란 시간은 나에게도 어느새 리액션이 몸에 배게 되었다.

갑과 을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이 회사와 회사의 계약이 직원 간의 관계로 이어진다. 이러한 갑질과 진상들로 인해 AE들은 지쳐 업계를 떠나기도 하고, 사람에게 질리기도 한다. 스트레스로 탈모가 오는 AE들도 주변에서 많이 보는 것 같다. 갑과 을이라는 단어보다 파트너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어렵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최소한 상식과 예의에서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인격적으로 서로 존중하기를 희망한다.

▷ 백종도 컬럼니스트는 [애드쿠아] AE로 재직 중이며, 퍼포먼스, 프로모션, SNS 및 TVC캠페인 등을 폭넓게 경험한 멀티형 광고인이다. 
(주요 작품 : 삼성 스마트TV, 쉬크, 삼성화재 다이렉트, 삼성카드, 라이프플래닛, 코인원, I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