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에 '엄마로 만들어줘서 고마워'라고 적혀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

[AP신문=하민지 기자] 현대자동차가 지난 3일, 더 뉴 싼타페 광고 두 편을 공개했다. 하나는 '엄마의 탄생' 편이고 나머지 하나는 '끄떡없이 버틸게' 편이다. 편의상 전자를 엄마 편, 후자를 아빠 편이라 칭한다.

여성은 집안일, 남성은 바깥일

엄마 편은 갓난아기를 낳고 육아에 전념하는 여성이 점점 엄마가 되고 있다고 아이에게 고백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엄마 역을 맡은 광고 모델은 아이에게 음성 편지를 남기듯 "꼬맹아, 엄마로 만들어줘서 고마워"라고 이야기한다.

광고 속 여성의 일상은 아이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한밤중에 곤히 자는 남편 대신 우는 아이를 달랜다. SNS에는 아이 사진만 올리고 쇼핑하러 가서는 아이 옷만 산다. 광고는 이런 모습이 엄마가 돼 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아빠 편 내용은 조금 다르다. 아빠 편은 아빠 역을 맡은 남성 모델이 새벽에 조깅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남성은 운동한 후 샐러드를 챙겨 먹고 울고 싶어도 울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려면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하고, 그러려면 몸과 마음이 강인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늦은 밤, 퇴근한 후 잠든 아이들을 보면서 "끄떡없이 버틸게"라고 말하며 광고는 마무리된다.

이처럼 광고는 여성은 집안일하고 육아하는 엄마, 남성은 밖에서 돈 버는 직장인으로 표현했다. 엄마 편은 "엄마로 만들어줘서 고마워"라는 멘트가 나오면서 모성이 강조되는 반면 아빠 편에서는 '아빠'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광고가 전통적으로 반복돼 온 성 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해 만들어진 것이다.

여성에겐 모성, 남성에겐 맨박스 강조

작년 한 해 동안 TV와 유튜브 광고 1,387편을 보고 양성평등 보고서를 작성한 서울YWCA는 광고 속 성차별이 심각하다고 지적해 왔다.

여성은 뷰티 제품, 남성은 IT 제품을 좋아한다거나 상품을 사는 사람은 여성, 상품 정보를 설명하는 사람은 남성 등 각 성별이 가진 고정관념으로 광고가 제작돼 왔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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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현대차 광고도 마찬가지다. 김예리 서울YWCA 여성운동국 부장은 지난 15일 AP신문에 "이번 싼타페 광고는 남성은 경제 활동의 주체로, 여성은 육아의 주체로 그려 성 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해 만들어졌다"라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성 역할 고정관념에 의지해 만들어진 광고가 왜 문제인지 자세히 설명했다.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여성이 많다는 점에서 현실을 재현한 광고를 문제 삼는 건 억지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싼타페 광고처럼 성 역할 고정관념에 의지한 광고가 소비자의 공감대를 형성해 호응을 받기도 하기 때문에 광고주가 이런 방식을 놓지 못하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이 경제 활동을 하는 맞벌이 가정과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있고 대중도 성 역할 고정적인 인식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광고가 사회와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관습화된 성 역할과 이미지에 의존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성 역할 고정관념은 편견과 불평등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 여성을 가정이라는 사적인 영역에 가두고 사ㆍ공적인 영역의 책임을 모두 떠안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더불어 남성에게도 경제적 책임의 무게를 지운다는 점에서 이런 성 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광고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김 부장은 아빠 편에서 남성이 울고 싶어도 그냥 참는 모습을 두고 "맨박스의 전형"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맨박스는 남성이 '남성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결국 싼타페 광고는 여성은 모성을, 남성은 맨박스를 강조하면서 성 평등하지 못한 내용으로 제작됐다.

이상적 모습 판매하는 광고, 좀 더 신중해야

고정된 성 역할을 내세워 논란이 된 광고는 또 있다. 지난 8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금연 광고 '담배는 노답(No答), 나는 노담(No담배)'이다.

사진 보건복지부

광고에는 10대 청소년 4명이 등장한다. 여성 2명, 남성 2명이다. 남성 청소년은 토론을 좋아하는 사람, 신제품을 남보다 빨리 사는 얼리어답터로 소개됐지만 여성 청소년은 화장하는 걸 좋아하는 뷰티 유튜버, 아빠의 딸 바보(딸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로 소개됐다.

이 광고에서도 성 역할 고정관념이 드러나 있다. 우선 서울YWCA의 지적처럼 여성은 뷰티 제품을 좋아한다는 시각이 드러나 있다. 또한 남성은 취미와 기호로 자신을 소개했지만 여성은 자신을 아빠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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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YWCA는 작년 7월에 발간한 보고서에서 광고를 '이상적인 모습을 판매하는' 것이라 이야기했다. 광고는 원래 제품과 브랜드에 관해 이상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사람에 관해서도 '이런 모습이 이상적이다'라고 규정하며 특정 성별의 특정 역할만 강조한다면 소비자는 은연중에 차별적 이미지를 학습하게 될 수 있다.

가령 뷰티 브랜드 광고에 여성 모델만 자꾸 등장하면 뷰티 제품을 남성이 쓸 경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차별의 시선이 생겨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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