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신문광고평론 #610] ※ 평가 기간: 2022년 7월 28일~2022년 8월 4일

[AP신문광고평론 No. 610]  방 한가운데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주인공 사진 빌리 광고 ⓒAP신문
[AP신문광고평론 No. 610]  방 한가운데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주인공 사진 빌리 광고 ⓒAP신문

[AP신문 = 황지예 기자] 여성용 면도기 등 여성 용품을 판매하는 미국 브랜드 빌리가 지난달 공개한 '체모의 법칙' 광고입니다.

한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민트색과 주황색 등으로 꾸며진 방 안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방 안에 있는 작은 단상 위에 올라가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체모의 법칙'이라는 긴 스크립트를 읽으며 연설하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아이는 맨 처음으로 "머리카락은 많을수록 좋은데, 체모는 적을수록 좋은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이어 "남성의 콧수염은 멋진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여성의 콧수염은 없애야 할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며 문제 제기를 이어갑니다.

그 외에도 겨드랑이 털, 눈썹 모양 등 체모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며 이 사회에 체모를 향한 너무나 많은 기준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마지막에는 "우리가 이런 규칙들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라고 질문을 던지고, "언젠가는 이 법칙들이 모두 없어질 것"이라고 해답을 제시하며 방 안을 모두 덮을 만큼 긴 스크립트를 던져버리고 홀연히 떠납니다.

이 광고는 영상 화질, 색감과 시각 효과 등 전반적인 영상미에서 레트로한 느낌을 추구합니다.

[AP신문광고평론 No. 610]  빌리 : 체모의 규칙 광고 ⓒAP신문
[AP신문광고평론 No. 610]  빌리 : 체모의 규칙 광고 ⓒAP신문

AP광고평론가들은 명확성에 4점을 주며 주인공 아이의 입을 빌려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광고 효과의 적합성도 3.8점을 받았습니다.

사회적 통념에 문제를 제기해 창의성은 3.6점을 받았고, 예술성 시·청각 부문도 각각 3.4, 3.2점의 평이한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호감도는 3.2점 총 평균은 3.5점으로 준수한 편입니다.

사회적 문제로 긍정적 인식 제고

평론가들은 기업이 사회적 통념에 문제를 제기하고 올바른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광고의 순기능을 보여주며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인식 또한 제고했다고 호평했습니다.

[AP신문광고평론 No. 610]  여성의 콧수염이 터부시되는 상황을 비판한다. 사진 빌리 광고 ⓒAP신문
[AP신문광고평론 No. 610]  여성의 콧수염이 터부시되는 상황을 비판한다. 사진 빌리 광고 ⓒAP신문

 

체모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고정관념에 물들지 않은 아이의 입을 빌려 더 효과적으로 전달했습니다. 일반적인 제모 관련 제품을 파는 브랜드였다면 체모를 당연히 제거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을텐데 이 광고에서는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 매우 흥미롭습니다. 체모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제모를 하는 것도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함의를 느낄 수 있어 오히려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게합니다.

- 서정화 평론가 (평점 4)

사회 통념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표현했으며, 광고의 무드, 색감과 진행 속도와 같은 연출 또한 부담 없고 깔끔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범람하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즐거운 아젠다'을 제시하는 차별화된 광고이며, 광고의 바람직한 순기능적인 역할을 했다.

- 곽민철 평론가 (평점 4.5)

면도기 기업의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하지만 여성용 면도기를 파는 기업이 체모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모순되고 다소 기만적이라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AP신문광고평론 No. 610]  체모를 둘러싼 사회의 많은 기준을 합성으로 표현했다. 사진 빌리 광고 ⓒAP신문
[AP신문광고평론 No. 610]  체모를 둘러싼 사회의 많은 기준을 합성으로 표현했다. 사진 빌리 광고 ⓒAP신문

 

여성의 몸을 긍정하며 여성용품을 파는 광고는 지난 몇 년 간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뷰티 제품들이 이런 비판을 마주했는데, 빌리 역시 제모용 면도기를 판매하며 여성의 체모를 긍정하는 광고를 제작했다. 체모가 없어야 아름답다는 세간의 편견을 부정하자는 메시지가 이들이 판매하는 제품과 부딪칠 때 이를 해석하는 건 오롯이 관객의 문해력에 달려있다. '체모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면서 왜 체모 제거용 면도기를 파는 거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여성의 몸을 진정으로 긍정할 수 있는 자본주의는 실재하는가'의 고민으로 빠지게 된다.

다시 해당 광고의 피상적인 메시지로 돌아와 '밀고 싶을 때 미는 체모'라는 메시지는 과연 체모를 긍정하는 메시지일까? 결국 '체모가 없어져야 한다'는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는 피상적인 언어이지 않을까? 한참 뷰티브랜드에서 '네가 어떻게 생기든 넌 멋져' 류의 '주체적 꾸밈'에 대한 메시지가 진정한 여성의 신체 긍정인지에 많은 비판이 일었다. 해당 광고도 같은 맥락에서 과연 제품을 팔기 위해 여성의 체모를 긍정하는 것이 여성 타깃에게 진정한 체모 긍정의 힘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 홍산 평론가 (평점 4.2)

좀 더 흥미로운 장치 필요해

그 외 광고의 메시지는 좋지만 광고 속에서 이를 전달하는 장치가 주인공이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뿐이라 아쉽고, 좀 더 흥미로운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AP신문광고평론 No. 610]  연설 후 자리를 떠나는 주인공. 바닥에는 스크립트가 널려있다. 사진 빌리 광고 ⓒAP신문
[AP신문광고평론 No. 610]  연설 후 자리를 떠나는 주인공. 바닥에는 스크립트가 널려있다. 사진 빌리 광고 ⓒAP신문

 

캠페인에 대한 의도는 좋으나, 이런 의도를 집중시킬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합니다. 계속 뇌리에 남아있던 것은 광고 속 여자아이가 쉴새 없이 떠드는 것이었는데요. 이렇게 일일히 설명하는 것보다 캠페인의 의도를 집중시킬 수 있는 시각적 요소들이 계속 나왔다면 이 캠페인의 진행 목적이 더 납득됐을 것 같습니다.

- 박선 평론가 (평점 2.5)

체모에 대한 자유로움을 역설하는 사회 운동은 흥미로운 주제다. 하지만, 사회 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지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소녀가 흥미로울까? 좀 더 솔직하게는, 어떤 올바름에 대한 비전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일이 관심을 끌까? 왜 '심슨 가족'에서 리사 심슨은 피곤한 캐릭터로 느껴질까? 어떤 정치적인 논의에 무관심했던 외부인을 참여시키려면, 참여 과정이 흥미로워야 한다. 이 광고는 사회 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클리셰를 답습하며 너무 많은 말들을 늘어놓고 있다.

- 김남균 평론가 (평점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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