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가 쏘아올린 CI, 정기선 '승계자금 활용' 논란 일파만파
[AP신문 = 배두열 기자] HD현대가 신규 출원한 CI의 상표권 사용료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새로운 CI 사용 권리를 독점하고 계열사들에게 사용토록 하는 것이 사업기회유용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상표권 수익이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의 승계를 위한 실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의 새 CI 사용에 따라 ▲현대오일뱅크 ▲한국조선해양 ▲현대중공업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등 5개 계열사는 기존에 부담하지 않았던 심볼 부분에 대한 상표권 사용료(사용료율 0.05%)를 HD현대에 지급하게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HD현대의 공시로 확인된 상표권 수익은 이들 5개 계열사에서 올해부터 오는 2025년까지 813억1400만원 규모로 예상됐다. 총 거래금액이 50억원 미만인 회사는 공시 대상에서 제외된 만큼, HD현대가 수취하는 상표권료는 늘어날 수 있다.
HD현대 각 계열사들은 앞서 지난해 12월 신규 CI 채택의 건을 각 이사화에서 의결하고, 올해부터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제개혁연대(이하 경개연)는 지주사 HD현대를 제외한 기존 상표권 소유회사들이 신규 CI를 채택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며 사업기회유용을 의심했다.
경개연은 5개 계열사가 신규 CI를 사용하면서 상표권 사용료 수취금액이 줄어드는 반면, HD현대의 경우 향후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이 지나치게 높아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매출액 규모가 큰 현대중공업의 경우 상표권 사용료 수취금액보다 HD현대에 지급해야 할 금액이 더 클 것이란 관측이다. 그룹 내 매출 비중이 큰 현대오일뱅크는 2010년 계열사 편입 후에도 자체 브랜드를 사용했고 자회사 등으로부터 상표권 사용료를 수취하는 입장이었으나, 신규 CI 채택으로 더 이상의 상표권 사용료 수취는 커녕 막대한 규모의 상표권 사용료 부담을 떠안게 됐다.
이와 달리, HD현대의 올해 예상 상표권 수취 규모는 255억원3300만원으로, 2020년 42억3100만원 대비 6배 가량 더 많은 수준이다. 2020년에는 기존 CI에 대해 HD현대를 포함한 6개 회사가 소유하고 있었고, 당시 14개 계열사로부터 182억원을 받아 이들 회사가 나눠 가졌다.
결국, 신규 CI를 HD현대가 단독 소유하면서, 5개 계열사는 상표권 수수료 수익이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오히려 사용료를 지불해야 할 처지다. 무엇보다도, 5개 계열사 모두 상장사라는 점이 문제다.
HD현대 측은 기존에는 현대오일뱅크 등 각기 다른 자체 CI를 채택하고 있었던 만큼 통일된 이미지 구축이 필요했고, 지주회사 체제에서는 지주회사가 통상적으로 브랜드 관리를 하기에 지주사인 HD현대가 그 역할을 맡은 것일 뿐이란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D현대 계열사들이 회사 수익에 해가 되는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과 그의 아들 정기선 사장 간 승계작업과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오너 일가 지분이 많은 HD현대로 새로운 CI 권한을 몰아준 것이 정기선 사장의 배당금에 톡톡한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다.
정기선 사장은 경영 전면에 나서며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지만, 승계 지분 재원 확보 측면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즉, HD현대 지분 5.26%를 보유한 정 사장이 부친인 정 이사장의 지분 26.6%를 증여받는 시나리오는 8000억원 규모(22일 종가 6만700원 기준)에 달하는 증여세 부담이 있는 만큼, 현재로서는 배당금이 가장 중요한 자금줄이다.
실제, HD현대 출범 이전 지주사 보유 주식이 1주도 없었던 정기선 사장은 2018년 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5% 이상 지분을 확보하며 이후 연간 130억~200억원 규모의 배당금을 챙기고 있다.
HD현대 역시, 지속적으로 높은 배당률을 유지해왔다. 2021년 별도기준 당기순이익 5021억원 중 3922억원을 배당, 배당성향이 78.1%에 달한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업황이 좋지 않아 당기순이익이 864억원에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배당금은 2615억원에 달해 배당성향이 300% 이상으로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상표권 수익까지 더해지며 올해 HD현대의 배당 여력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HD현대가 늘리는 배당금의 최대 수혜자는 결국 지분 비중이 높은 오너 일가가 될 수 밖에 없다"며, "특히 계열사 가운데 정기선 사장의 지분율이 1%를 초과하는 회사가 없는 만큼, CI 사용료가 HD현대로 집중되는 것은 계열사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