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셜] '유통 산업' 생태계 위기…'사회적 계약 틀'로 진화해야
[AP신문 = 배두열 기자] 티메프(티몬·위메프)의 대규모 미정산 사태 후폭풍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대형마트 홈플러스에 이어 명품 플랫폼 발란까지 기업회생(법정관리)절차에 들어가며, 국내 유통 플랫폼 생태계가 본질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디지털 전환이란 거대한 흐름 속에서 화려한 성장을 이뤘지만 그 이면에는 재무 취약성이 구조적으로 도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호접지몽(胡蝶之夢)'에 빠진 듯 나비인지 사람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환상에 도취해 있었다. 그리고 이는 비단 특정 플랫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생태계 전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 잇따르는 정산 지연, 자금난, 폐업 사태는 유통산업 전반의 신뢰 위기로 번지고 있다. 즉, 단지 개별 기업의 재무적 실패가 아니라, 생태계 전반의 지속 가능성과 회복 탄력성에 대한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에, 플랫폼 산업에 맞는 정밀하고 균형 잡힌 정책 설계는 더욱 절실하다. 무엇보다도, 업계에서는 혁신의 동력은 유지하면서도, 일률적이고 사후적인 규제가 아닌, 위험 수준에 따른 선별적 감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강형구 한양대 교수의 '조기 경보체계 구축'은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 교수는 단순한 재무지표 분석을 넘어, 정량적 리스크 지표와 정성적 경고 신호를 통합한 유통산업 다층적 조기경보체계(Early Warning System, EWS) 설계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위험 수준에 따라 플랫폼을 고위험군, 회복 중 기업, 안정군으로 구분하고, 이에 맞춰 차등적 대응을 수행하는 위험기반 규율 체계의 정립이다.
즉, 건전성을 유지하는 플랫폼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공시 의무 외에는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고위험 기업에 대해서만 선제적 감독과 개입을 강화함으로써,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고 산업의 혁신 가능성을 유지하는 균형 잡힌 규율 체계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효과적인 정책 설계 방향으로 세 가치 축을 제언했다. 우선은 플랫폼 거래대금 보호체계 고도화 및 정산 관리 차등화다. 재무위험이 높은 플랫폼은 일정 기준 이상의 판매대금을 신탁계정 또는 공제조합을 통해 안정적으로 분리 보관하도록 유도하고, 재무적으로 건전한 플랫폼은 스마트에스크로 등 기술 기반 자율적 보호장치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과도한 일괄 규제를 지양하고, 플랫폼별 특성과 위험 수준에 부합하는 균형 잡힌 거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로는 데이터 기반 상시 감독체계(SupTech) 및 핀포인트형 위험관리 체계 구축이다. 플랫폼별 위험 수준에 따라 고위험 플랫폼을 선별해 집중 감독하고, 재무건전성이 확보된 기업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감독만을 유지함으로써, 효율성과 혁신성을 동시에 달성하는 정밀 감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시장 자율과 기술 혁신을 활용한 협업형 생태계 구축이다. 자율규제협의체를 통한 정산 기준 고지, 표준계약서 보급, 위험정보 실시간 공시체계 도입, 민간 주도의 팩토링・보증보험 활성화, 스마트컨트랙트 기반 에스크로 솔루션 개발 등을 통해, 민간 혁신기제를 중심으로 시장 자체 조정능력을 강화하고, 거래 신뢰를 복원해야 한다. 네이버의 빠른정산이나 안심보험이 대표적 사례다.
이제는 산업 성장 속도에 맞춘 리스크 완충 장치와 균형 잡힌 규율 메커니즘이 필수적인 시대다. 더욱이, 유통 플랫폼 생태계는 단지 기술적 채널이 아니라, 사회적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런 만큼, 산업 전반의 신뢰 기반을 설계하는 사회적 계약의 틀로 진화해야 한다. 정부 또한 규제 일변도의 방식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반의 과학적 감독, 위험도에 따른 유연한 대응, 민간과의 협업을 통해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접근은 결국 기업, 소비자, 협력업체 모두가 공정하고 안정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디지털 상생 구조의 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