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셜] 상법 개정, 가장 쉬운 길…'정치 실종'에 또 법 몇 줄 남는다

2025-05-25     배두열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5월 22일 제주동문시장 앞 탐라문화광장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AP신문 = 배두열 기자] 옛 중국에서 한 농부가 제사용 소의 뿔이 조금 기울어져 있다며, 이를 바로잡으려고 천으로 팽팽하게 뿔을 동여맸다가 뿔이 뿌리째 빠지며 소를 죽이고 말았다. 

결점을 고치려다 수단에 집착한 나머지 더 큰 해악을 낳는 우를 경계하는 '교각살우(矯角殺牛)'다. 

최근 정치권이 상법 개정에 접근하는 방식이 그렇다. 본질은 외면한 채 법률 개정이라는 외과적 처방만을 고집한다면, 결국 기업 경영과 시장 전체의 신뢰는 흔들리기 마련이다. 정작 정치가 나서야 할 조정과 설득은 부족한 채, 법제화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위험하다.

다가오는 6월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상법 개정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장기 투자하래서 우량주를 샀더니, 새끼를 낳았는데 그 새끼는 내 것이 아니더라”며 물적분할과 자회사 상장 문제를 정면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법률 하나로 복잡한 이해관계와 구조를 해결하겠다는 시도는 현실과 괴리가 있다. 충실 의무의 범위를 넓힌다 한들,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해석되고 집행될지는 결국 법원의 판단에 달릴 수밖에 없다. 이는 기업과 이사들에게 끊임없는 법적 불확실성과 소송 리스크를 안길 수 있고, 경영 판단이 주주 눈치 보기로 위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업의 모든 경영상 판단이 주주 이익에만 부합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단기 손실을 감수하고 장기 성장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때마다 법적 위험에 노출된다면, 기업은 안정적인 경영을 지속하기 어렵고, 결국 시장 전체의 신뢰도 흔들릴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은 바 있다. 2020년의 공정경제 3법이 그 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다중대표소송제 등 개혁적인 장치들이 도입됐지만 실효성은 없었던, 이른바 ‘법은 있는데 실행은 없는’ 사례였다. 

즉, 물적분할 갈등의 본질은 법률 부재가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주주와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공정한 협의 시스템이다. 상법 개정을 둘러싼 기업 경영의 자율성 침해, 소송 남발 우려, 해외 투기자본 악용 가능성 등 복합적인 쟁점들은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치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법 몇 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자발적으로 주주 보호에 나설 수 있는 인센티브를 설계하고, 사회적 합의를 유도할 수 있도록 조정하고 중재하는 것, 이것이 정치가 법을 올바르게 활용하는 방식이다. 재계와 얼마나 머리를 맞댔는지도 짚어볼 부분이다. 

지난해 금융당국의 밸류업 정책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지주 회장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자발적이고 실질적인 주주환원 방안을 이끌어냈다. 이는 법 없이도 신뢰 회복이 가능함을 보여준 긍정적 사례다.

정치는 법을 만드는 자리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합의를 설계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자리여야 한다. 입법과 행정이 밀착되어 있는 한국 정치 구조에서는 더욱 그렇다. 법은 수단이지 본질이 아니다. 정치는 본질을 다루는 자리다.

뿔 하나 바로잡겠다고 소를 죽이는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물적분할로 상처를 입은 주주의 고통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그 해법이 또다시 법 몇 줄로 포장된 채 정치의 책임을 비켜가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향후 기업 지배구조 개선 논의는 재계의 우려를 불식시키면서도 소액주주 보호라는 입법 취지를 달성할 수 있는 '정치적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