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트리아논…이찬진 '소비자 보호'는 대신증권에 無力

2025-11-16     조수빈 기자
©AP신문(AP뉴스)/이미지 제공 = 금융감독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5일 금융감독원 본원 1층 금융민원센터에서 민원 상담차 방문한 민원인을 대상으로 현장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AP신문 = 조수빈 기자] 독일 트리아논 펀드가 불완전판매 논란의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판매사들의 보상 기조가 엇갈리고 있다. KB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은 선제 대응에 나선 반면, 판매액이 세 번째로 많은 대신증권은 여전히 절차에 따르겠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거듭 천명했음에도, 여전히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판매사에 대한 투자자 불만은 더 커지는 분위기다. 더욱이 금감원장의 구호가 구속력 없는 공염불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찬진 원장 취임 이후, 해외 부동산펀드를 비롯한 대체투자 상품 민원에 대한 정책 방향을 '자율조정'에서 '적극 개입'으로 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찬진 원장은 이미 지난 9월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임직원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고 가족에게 권하지 못할 상품은 팔지 말라"며, "금융사고 이후 개선 노력이 미흡한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않는' 행태를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 같은 상품 투자했는데 ‘어느 금융사 골랐느냐’에 구제 수준 천차만별


트리아논 펀드는 이지스자산운용의 ‘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호’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트리아논 타워를 기초자산으로 한 공·사모 합계 3750억원 규모의 상품이다.

그러나 2024~2025년 금리 상승, 공실 확대, 리파이낸싱 난항이 겹치며 LTV 제약과 캐시 트랩이 작동했고, 임차인 계약 이슈까지 더해지면서 자산가치 하락과 강제 매각 국면으로 이어졌다. 기준가는 최저 0.01원까지 하락해 원금 대부분의 회수가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 단체는 “현지 선순위 은행담보 대출 구조와 SPC(현지 특수목적법인) 지분 투자라는 핵심 구조, 후순위 투자자 손실 확대 가능성, 가격 하락 리스크 등에 대한 안내와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다”며 불완전판매 의혹을 제기하고 내용증명 발송과 집단 소송 절차에 착수했다. 판매 단계의 적합성·적정성 심사, 위험등급 표기·설명의무 이행 여부가 분쟁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실제, 9월 말 기준 트리아논 펀드 불완전판매 관련 금감원 접수 민원은 한국투자증권 26건, 국민은행 19건, 대신증권 12건 등 총 88건으로 집계됐다. 공모 판매액에서도 각각 KB국민은행 357억원, 대신증권 266억원, 한국투자증권 241억5000만원으로 비중이 높다. 

이런 가운데, KB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은 일찌감치 배상 테이블을 마련했다. KB국민은행은 1등급(매우 높은 위험)으로 분류돼야 할 상품이 2등급(높은 위험)으로 잘못 입력돼 고객들이 실제보다 위험도가 낮은 상품으로 인식한 채 가입한 것으로 판단, 원금의 최대 80%까지 자율 보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일부 불완전판매가 있던 건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신속한 보상 절차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일부 고객을 대상으로 자율배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고객 민원이 접수되면 내부적으로 판매 과정 전반을 조사하고, 불완전판매가 확인될 경우 자체 보상 방안을 마련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대신증권은 현 시점에서 보상 기준 논의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불완전판매가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면 보상 기준을 재논의하거나 변경할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며, “트리아논은 아직 최종 청산 전이고, 불완전판매가 인정되는 경우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 절차와 기준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 청산 가능성 요원에 투자자만 '발 동동'…이찬진 '소비자 보호' 강화 기조 시험대


하지만 청산이 되려면 현재 법원 통제 아래 도산 절차 중인 트리아논 빌딩이 팔려야 하는데, 그 시점을 가늠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트리아논 펀드 단체소송을 추진 중인 법무법인에 따르면, 청산까지 4~5년 이상 걸릴 수 있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뿐만 아니라, 이지스자산운용의 트리아논 펀드 계좌에 대해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가압류 절차에 나서면서, 펀드 청산에는 한층 더 큰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 6일 트리아논 펀드 예금채권 50억원에 대한 SC은행의 가압류 결정이 내려지면서 펀드 계좌가 동결돼 유동성이 막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회계감사비, 법무자문비, 수익자 통보비용 등 청산 과정에 필수적인 기본 경비를 집행할 수 없고, 도산관재인 협의 등 후속 업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신증권은 불완전판매를 의심하게 하는 정황도 일부 드러났다. 이미 7월 공개된 녹취록에서 한 판매 직원은 "수익이 정해져서 나오는 거라 6개월마다 이자가 지급된다", "6%짜리 확정 이자라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고객은 "최악의 경우 어느 정도 마이너스가 있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도, 담당 직원이 마이너스는 없고 계속 연 6% 플러스알파가 되는 것들로 계속 가지고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대신증권의 이러한 잣대는 올해 라임 펀드 사태와 관련해 영업 직원을 상대로 최대 2억4000만원 규모의 구상권을 청구해 논란을 빚었던 장면과 겹쳐 보인다. 회사 측은 당시 “불완전판매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대규모 배상 책임을 직원 개인에게 떠넘기는 전례 없는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즉, 내부 직원을 향해선 강경한 '본보기식 책임 추궁’에 나서면서도, 트리아논 펀드 피해자에 대해서는 관망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일련의 과정에서, 소비자 보호는 뒷전이고 손익계산서만 들여다보는 경영 방식이 여실히 드러난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같은 상품에 투자했는데 ‘어느 금융사를 골랐느냐’에 따라 구제 수준이 천차만별인 상황이 벌어진 셈"이라며, "트리아논 펀드를 통해 이찬진 금감원장이 취임 후 내세운 '소비자 보호 강화' 기조가 첫 시험대에 올랐다는 시각이 우세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