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느 넷플릭스 중독자의 고백
2019-03-17
[AP신문= 김종빈 객원 칼럼니스트)] 넷플릭스는 최근 한국에 상주인력을 두고 공격적인 마케팅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인터넷TV(IPTV) 사업자인 LG유플러스와 제휴하는 등 국내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생소한 넷플릭스가 이제는 콘텐츠 대기업인 지상파들의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AP신문]은 초창기부터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해온 광고업계에서 종사하는 박종빈씨로부터 넷플릭스와 관련된 기고를 받아 이를 전재한다. (편집자 주)
어느덧 2019년을 살게 되면서 나는 언젠가부터 TV를 잘보지 않게 되었다.
TV 드라마라는 게 일단 주연급이나 조연급의 발연기가 좀 곤혹스럽다. 뭔가 맥락없는 줄거리 전개 속에서 갑자기 내지르는 핵심 대사가 귓청을 때리기 시작하면 나는 서슴없이 리모콘을 찾게 된다.

@위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출처: 뉴스에이드)
▲ 발연기 '곤혹'…음악프로 '뽕빨' 부족
뉴스는 둘 중 하나다. 겉핥기이거나 편향성이 느껴진다. 일단 취재물 자체가 누군가 떠먹여준 취재의 산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앵커가 던지는 말의 신뢰감도 부족해 보인다.
스포츠는 맨날 그게 그거다. 이렇게 된 건 사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곧잘 패배하는 것도 원인이다.
이젠 맘편히 오늘도 이기지 못할 거라고 즉 또 질 거라고 생각하면 과감히 스킵할 수 있다.
음악프로그램은 뽕빨(enraptured-state)이 부족하다. 음악프로에는 항상 '아'하고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이 나온다. 근데 난 그걸 좀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 같다.
십년도 넘게 그런 관객들의 리액션을 보다보니 이젠 질릴 때도 됐다. 아마 나는 아직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노력이나 '필(feel)'이 좀 떨어지는 모양이다.

@한 예능 토크쇼. 위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유튜브캡쳐)
▲ 예능·토크쇼 "지들만의 리그"
비온 뒤 죽순이 번지듯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자기들끼리만 신나서 즐겁게 떠들고 놀고 있는 내용인 듯하다. 매주 새로운 게스트들을 만나는 MC들을 보며 약간 '부러우면 지는거다' 라는 생각도 든다.
토크쇼는 뭔가 꽤 중요한 것을 토론하는 거 같은데 역시 지들만의 리그라는 느낌을 극복하기 어렵다.
먹방이나 여행프로는 새로나온 과자처럼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왜 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가? 때론 맛없는 음식을 먹는 프로는 없는가? 그런 시잘데 없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그나마 난 자연을 보고 싶은데 잔뜩 들뜬 사람만 나온다. 안내자 격이어야 할 그 출연자의 얼굴과 표정을 보며 때론 그가 살아온 인생을 곱씹게 되기도 한다. 좀 그런게 있다면 오버인가. 으흠.
그럼에도 난 동물 프로그램은 가끔 본다. 솔직히 왜 보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 나레이션은 마음에 썩 들지는 않는다.

▲ '컨텐츠 공룡' 유튜브·넷플릭스의 습격
가끔 스마트폰으로 모 통신서비스의 VOD 프로그램을 보면 내가 절대 보지 않는 프로그램은 엄청나게 많이 있다. 6850개가 넘는 프로그램들. 이것들은 최소 30분에서 1시간 짜리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매년 제작비로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내가 보고 싶어지는 프로그램은 점점 줄어들고 사라지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갑자기 뒤통수를 벼락같이 때리는 것이 있다. 이런 걸 생각하는 것조차 의미없고 아주 한가한 질문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이 유튜브와 넷플릭스다.
질문보다 적응이 먼저다. 살아남으려면...
이 자리를 통해 사실 고백하자면 유튜브를 어떤 날은 24시간 이상 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24시간동안 본다는 것은 유튜브를 켜놓고 잠들었다 다시 깨서 또 보고 한다는 얘기다.
놀라운 것은 그러면서도 그땐 행복씩이나 했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스스로 자제해야 겠다는 마음의 다짐을 하게 될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 유튜브의 중독자는 아니라고 믿는다. 나는 아직 희망한다.

▲ 넷플릭스 너 마저도…"국민이 개돼지냐?"
유튜브 서비스의 단점이나 혹은 그것을 볼때 뭔가 마음이 복잡해 지는 것을 깨닫고 해소하려는 서비스가 있다. 넷플릭스나 아마존, 판당고, 훌루 등 이른바 유료 온라인 컨텐츠 플랫폼이다.
이 가운데 국내에서도 서비스 중인 넷플릭스를 가입해서 보면 이게 뭔가 하는 의문이 더 많아진다.
가장 답답한 점이 외국에서는 볼 수 있는 영화나 프로그램을 국내에서는 막아놨다는 것이다. 즉 국내 넷플릭스 서비스는 한글 자막이 없는 프로그램은 접속이 불가하도록 막아놨다.
이 때문에 개인적 취향에 맞는 프로그램 선택을 대략 90% 가량 제한 받고 있다. 문제는 그러고도 외국과 거의 같은 시청료(프리미엄 회원의 경우 월 1만4500원)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 쯤에서 '국민이 개돼지냐' 라고 외치던 모 후보 분이 생각나게 한다. 그 분은 이번 우리 동네 선거에서 장렬하게 떨어지셨다.

@LG전자 스마트TV 광고 사진 캡쳐
▲ 개구리처럼, 빨치산처럼 '리모콘과의 전쟁'
때론 내가 TV를 잘 안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시도 때도 없이 치고들어오는 광고 때문이기도 하다. 매시 정각을 전후해 리모콘을 들고 수십개 채널을 움직이는 것을 보면 개구리가 도로를 건너가는 오락실(arcade) 게임을 연상시킨다.
혹시 전국민이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에이.
물론 때로는 광고를 보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절대로 안보고 싶어하는 투쟁가 같은 사람도 있다.
그들은 TV를 켜자마자 빨치산들이 총탄을 아껴 쏘듯이 리모콘을 클릭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TV 컨텐츠 제작의 품질이나 내용, 몰입도는 더 떨어진다.
하지만 얼마나 돈을 내면 광고를 안볼 수 있을까? 5천원? 1만원?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선배들에겐 미안하게도...
국내 컨텐츠 경쟁력의 부실 내지 부재 문제는 우리나라 광고업계에 직격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지금은 고사포나 미사일급일런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분명 핵폭탄급이 될 것이다.

▲ 두 주먹 꽉 쥐고, 오줌을 참고
누구든 극장에서 두 주먹을 꽉 쥐고 오줌(urine)을 참으면서 영화를 봤던 어린 시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추억도 흘러간 노랫가락처럼 되새길런지 모른다.
그렇게 내가 사상투쟁하듯 TV를 보이콧해온 몇 년 사이에 TV방송국들의 컨텐츠 경쟁력도 나날이 죽어가고 있는 듯하다. (사실 내가 만난 어느 제작자 감독 형도 그런 방향으로 얘기를 했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들었거나)
그런데도 이 분들의 경쟁력을 추산할 수 있는 지표가 시청률이나 연말 시상식 정도이다 보니 무척 답답한 노릇이다. 이것은 비단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영상 컨텐츠를 사랑하거나 소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고민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어느 순간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지금보다 몰입도를 높이게 된다면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서비스와 함께 잠들게 된다면 기존 TV 컨텐츠의 경쟁력은 더 떨어지고 그 유탄은 고스란히 광고업계가 맞게 될 것이다.
광고업계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다. 당장 내 눈앞의 광고주는 물론 기획과 제작인력 모두가 밤새워 광고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마치 실험실의 청개구리처럼 시험관의 열기나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을 '근시안적(near-sighted)'이라고 나무랄 권능은 내게 없다. 그렇다면 신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