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신문(AP뉴스)/이미지 제공 = 고려아연 ▲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AP신문(AP뉴스)/이미지 제공 = 고려아연 ▲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AP신문 = 조수빈 기자] ‘비철금속업계 거목’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향년 84세를 일기로 타계한 가운데, 국가기간산업을 일군 그의 ‘사업보국’ 경영철학이 재조명되고 있다.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은 자원 빈국인 한국이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을 이루려면 반드시 비철금속산업·제련업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견지했다. 돈도 기술도 부족했던 볼모지에서 세계 최초 ‘아연·연·동 제련 통합공정’을 구현할 수 있었던 데는 최 명예회장의 성공에 대한 확신과 비전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란 평가다.  

최창걸 명예회장은 고려아연 창립에 앞서 울산 온산제련소 건설을 추진하는 데 매진했다. 1973년 정부는 중화학공업 육성 계획을 수립하면서 온산에 비철금속단지를 건설하는 방침도 결정했다. 최 명예회장의 부친 최기호 창업자는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동시에 제련업이 국제적 규모로 성장하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당시, 미국에서 유학 후 직장 생활을 하던 최 명예회장은 ‘한국으로 돌아와 일을 도와달라’는 최기호 창업자의 편지를 받고 1973년 10월 귀국했다. 이후 온산제련소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움직였다. 국민투자기금, 산업은행 등 국책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세계은행 산하 IFC(International Finance Corporation)와도 접촉해 차관을 도입했다. 

IFC는 온산제련소 건립에 소요되는 자금이 약 7000만달러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최 명예회장은 5000만달러에 해낼 수 있다고 설득했다. 또 5000만달러를 부채 60%, 자기자본 40%로 맞춰달라는 IFC의 요구에도, 최 명예회장은 이를 ‘7대 3’으로 조정하는 데도 성공했다.

©AP신문(AP뉴스)/이미지 제공 = 고려아연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제련소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AP신문(AP뉴스)/이미지 제공 = 고려아연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제련소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건설 비용을 효율화하기 위해서는 종합건설회사와 턴키 계약을 맺지 않고 구매에서 건설까지 직접 수행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단종면허 토목공사 업체들과 건건이 계약하는 방식으로 공사비를 절감했다. 그 결과 고려아연은 IFC 전망치 7000만달러보다 훨씬 적은 금액인 4500만달러로 온산제련소를 건립했다.

최창걸 명예회장은 회사의 발전에 필요하다면 선제적으로 투자하면서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을 지닌 인물이기도 했다. 

최 명예회장은 1980년대 후반 연 제련 사업 진출을 회고하면서 “연 제련은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소결-용광로 공법을 채택해오고 있었으나 환경문제가 중요하게 대두하고 있어 새로운 공법으로의 전환 필요성이 높았다”며, “당시 개발된 신공법들이 모두 상업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우리는 과감하게 기존 공법이 아닌 신공법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최 명예회장은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사장과 부회장으로 재임하면서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생산시설을 확장하는 데 힘썼다. 세계 최초로 아연∙연∙동 제련 통합공정을 구현하고 DRS 공법을 국내외를 통틀어 처음으로 상용화해 연 제련에 적용, 고려아연만의 독보적 경쟁력을 구축했다.

고려아연은 이 같은 최 명예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자양분 삼아 국가기간산업 대표 주자이자 글로벌 공급망 중추로 거듭났다. 

재계 관계자는 "최창걸 명예회장의 ‘사업보국’ 원칙과 기업가 정신은 고려아연이 백년 넘는 역사를 지닌 외국 제련소들을 뛰어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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